작성자 노무법인비상(admin) 시간 2022-11-14 14: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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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 조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 판례 굳어진다

 

대법원 “일할계산 규정 없어도 통상임금” 최초 판결 … 통상임금 판단 기준 확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판단하는 요건인 ‘재직자 조건’과 관련해 판례 흐름이 바뀌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급여규정에 일한 만큼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일할 정산’ 규정이 없더라도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정기상여금을 ‘근무기간에 비례해 지급한다’는 규정이 있어야 근로의 대가로서 청구할 수 있다는 기존 판례가 이번 판결로 뒤집혔다. 재직자 조건이 있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변경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 ‘일할 규정’ 없이 재직 조건 부여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10일 금융감독원 전·현직 노동자 1천708명이 금감원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일할 규정’이 없이 ‘재직자 조건’만 부가된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재직자 조건은 통상임금 요건인 ‘고정성’을 부정하는 지표라고 판단돼 왔다.

하지만 2020년 대법원이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제한 해석하면서 통상임금 소송의 기류가 변했다. 당시 대법원은 재직자 조건을 유효로 보면서도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서 재직자 조건과 일할 정산 규정을 함께 두고 있는 경우, 특정 시점에 재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기상여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 취지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일할계산해서 지급한다는 조건이 있다면 근로의 대가로 봐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금감원 사건도 ‘재직 조건’이 소송 향방을 갈랐다. 금감원은 연공제 직원들을 대상으로 홀수달의 1일마다 기본급의 100%를 상여금으로 지급했다. 그러면서 재직 중인 직원을 지급대상으로 제한했다. 취업규칙에는 ‘일할계산에 의한 임금지급’ 규정을 정하지 않았다.

금감원 직원들은 “정기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이라며 통상임금을 다시 계산한 다음 부족분을 추가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한 대가로 정기상여금을 해석해야 하는데 퇴직했다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2심 “이미 근로 제공했다면 소정근로 대가”

1심은 “정기상여금은 지급일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는 임금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노동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은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그 지급이 확정된 것”이라며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급에 관한 조건(재직자 조건)을 부가해 지급일 전에 퇴직하는 근로자에 대해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근로제공의 대가로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으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지급일자에 재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미 제공한 근로만큼의 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취지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세아베스틸 사건’ 예고편? 유사소송 파장 예상

이번 판결은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 특히 ‘재직자 조건’과 관련한 기존 법리의 변경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하급심에서 이미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배치되는 판결은 여러 차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소송’이 대표적이다. 서울고법은 2018년 12월 최초로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며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2019년 1월 대법원에 넘어간 이 사건은 현재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상태다. 항소심 판결이 인용되면 10여년 만에 통상임금 판단 기준이 바뀌게 된다. 세아베스틸도 금감원처럼 퇴직자에 대한 일할계산 규정이 없다. 이후 기술보증기금과 안전보건공단의 통상임금 소송도 잇따라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고 항소심에서 판단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2020년 4월 ‘일할 정산 규정’에 관한 효력을 해석한 대법원 판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알스트롬뭉쇼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당시 대법원은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에 지급조건에 관해 특별한 다른 정함이 없는 한 이미 근무한 기간에 비례하는 만큼의 정기상여금에 대해서는 근로의 대가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법리는 올해 4월 대법원에서 선고된 ‘현대제철 순천공장’ 통상임금 소송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은 일할계산해 지급하도록 정한 단체협약 규정을 적용해 퇴직자에게도 상여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금감원 사건’은 ‘일할 정산’ 규정 자체가 없었는데도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인정됐다. 통상임금 기준의 해석 범위가 넓어졌다고 평가되는 부분이다. 금감원 노동자들을 대리한 박현정·김남주 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이번 판결은 재직요건이 부가된 임금에 일할 규정이 없더라도 통상임금의 소정근로 대가성과 고정성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며 “재직요건이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한 무효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해 대법원의 후속 판결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 취재 : 홍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