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노무법인비상(admin) 시간 2023-05-19 09:41:35
네이버
첨부파일 :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무효” 첫 판결, “임금 삭감” 스모킹건

 

 

KB신용정보 소송, 전·현직 노동자 승소 … 법원 “정년 연장으로 임금삭감 불이익 커”

 

정년을 일정 기간 연장하면서 임금을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도 무효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임금피크제로 인한 임금 삭감의 불이익이 크고, 불이익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다면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정년유지형’과 달리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적법하다는 종전 판례 태도를 뒤집은 것이다. 사실상 정년 연장이 임금 삭감의 ‘보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만큼 향후 유사 소송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연봉 최대 45% 줄어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정회일)는 KB신용정보 전·현직 직원 A씨 등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및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지난 11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기간만큼의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 5억4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KB신용정보는 2016년 2월 과반수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5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발표해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던 시점이었다.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에게 직전 연도 연봉의 45~70%를 성과에 연동해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만 55세 이후부터 정년까지 3년간 직전 연봉의 300%(3년치 기준)를 받을 수 있었던 직원들이 임금피크제 시행 이후 매년 최고등급을 받았을 때만 기존과 같은 300%(5년치 기준)를 받게 됐다. 성과평가에서 최저등급(D)을 받을 경우 기존 연봉의 225%까지 삭감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를테면 행정직은 최고등급(S)을 5년 내내 받아야 기존 연봉의 300% 지급이 가능하다. 마케팅 직무는 S등급을 한 차례, 두 번째 등급(A+)을 두 차례 이상 받았을 때나 기존 연봉과 같은 수준을 받을 수 있다. 저성과자의 경우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임금이 최대 45%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A씨 등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무효”라며 2020년 8월 소송을 냈다.

‘정년유지형’ 대법원 법리 가져온 재판부

법원도 ‘임금 삭감’ 부분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근무 기간이 2년 더 늘었는데도 임금 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며 노동자들 손을 들어줬다. ‘임금 삭감’이라는 불이익이 발생하는데도 업무량이나 업무강도를 저감하는 등 조치가 없었다고 봤다.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무효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개별적인 업무성과 등에 관계없이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이르렀다는 사정만으로 임금을 감액하는 것은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의 임금에 차등을 두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성과가 월등하더라도 임금피크제 시행 전의 연봉을 받게 되는 구조를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금피크제의 대표적 유형인 ‘정년유지형’은 이미 지난해 5월 ‘한국전자기술연구원(옛 전자부품연구원)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효력을 상실했다. 대법원은 연령을 이유로 정년을 앞둔 직원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 재판부도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무효 기준’인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노동자들이 입는 불이익 정도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의 본래 목적 사용 여부를 판단 근거로 삼았다.

“불이익 조치 없어” 대부분 기업 파장 전망

하지만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6월3일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크라운제과 본사를 방문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하급심에서 노동자 패소 판결이 주류를 이뤄 임금피크제의 ‘완전 무력화’로 보기는 무리였다. 실제 전력거래소·KT·국민연금공단·삼성화재 사건은 모두 사용자가 승소했다. 다만 KT 사건 재판부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대법원 법리를 정년연장형의 참고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아 불씨를 살렸다.

그러나 정년 유지·연장을 불문하고 임금피크제는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오며 판세가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관련 사건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된 2013년 이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체 7만6천507개 중 87.3%는 ‘정년연장형’을 선택했다. 대부분 사업장에 해당하는 만큼 줄소송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법조계는 임금피크제 소송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소송에서 노동자들을 대리한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매일노동뉴스>에 “이번 판결은 노동현장에서 고령자의 임금을 삭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임금피크제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깊은 의문을 던진 것”이라며 “사용자에게 임금피크제의 도입과 적용은 신중해야 하며 반드시 불이익이 크지 않고 불이익에 상응하는 대상 조치를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 취재 : 홍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