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속보> 중노위 “CJ대한통운, 택배노조와 교섭 나서야”…부당노동행위 판정에 업계 '들썩'
CJ대한통운이 대리점주와 계약을 맺은 대리점 택배기사로 이뤄진 노동조합과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왔다.
올해 상반기를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 가장 큰 이슈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씨제이대한통운 주식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서 초심을 취소하고 신청인인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현 전국택배노동조합, 이하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판정문은 약 한달 후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은 씨제이대한통운(이하 '회사')과 직접 계약관계가 아닌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요구에 원청 격인 씨제이대한통운이 나서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조합원 3,500여명으로 구성된 전국단위 노조다. 노조는 2020년 3월, 회사를 상대로 "씨제이 대한통운은 대리점 택배기사와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대해 사용자로서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 할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단체교섭 요구에 나섰다.
하지만 회사는 "대리점 택배기사들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후 노조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이행하라고도 촉구했지만 회사는 계속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노조가 "교섭을 계속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한 것.
결국 이 사건에서는 회사의 당사자 적격(노조법상 사용자 인지) 여부, 회사가 노동조합이 교섭요구 했을 때 이를 공고할 의무가 있는 여부, 회사가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됐다.
특히 노동조합은 "회사는 이 사건 대리점 택배기사의 업무수행 전 과정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업무내용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대리점 택배기사의 노무제공 실질, 전국적 택배운송시스템의 편입 등 사정을 고려하면, 피신청인인 씨제이대한통운이 교섭당사자가 됐을 때만이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조정, 장시간 노동시간 등의 문제 개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씨제이대한통운은 단독 혹은 대리점주와 함께 교섭의무를 부담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노동조합 측은 CJ대한통운이 교섭에 나서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회사가 앱을 통해 택배기사들이 수행하는 서비스 전 과정을 기록하고 평가하고 있는 점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으면 대리점주와 재계약 여부에 영향을 받는 등 간접적인 불이익이 있는 점 ▲노조가 교섭하는 140여개의 대리점이 '원청에서 해결할 사안'이라고 계속 답변해 온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회사는 ▲앱은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위한 도구이고, 업무매뉴얼도 참고자료지 노무지휘권을 행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점 ▲택배기사들에게 평가나 업무매뉴얼 미준수를 이유로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은 점 ▲수수료율을 대리점주와 택배기사가 상호 결정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며 "도급사 입장에서 원청사가 어느정도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이런 사실만으로 단체교섭을 확장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초심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청구인인 노조의 신청을 각하한 바 있다. 당시 서울지노위는 "택배기사들의 분류작업의 효율화, 이를 통한 근로시간의 축소,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개선 등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런 당위성과는 별개로 단체교섭 당사자로서 사용자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기본적 노동조건 등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는 구체적 사안마다 달리 해석될 수 있고 법적 안정성에 반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해 기각한 바 있다.
하지만 중노위의 판단은 달랐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중노위는 이날 3시 경 초심을 취소하고 "씨제이대한통운 주식회사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신청 사건에 대해 신청인의 구제신청을 인정(부노 인정)하는 판정을 했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은 바로 행정소송에 갈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대리점도 당사도 각각 교섭 중인 상황에서 이런 판정은 아쉽다"며 "결정문 받아보고 향후 진행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단순히 씨제이 대한통운에만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 하청 소속 근로자들도 원청을 상대로 교섭요구에 나서고 있는 등 노동계에서는 원청을 노조법상 사용자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이번 판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법리를 근거로 들었는지는 추후 밝혀지겠지만, 그 내용에 따라 업계에 끼칠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원청이 하청업체 노조와 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로 인정되는 경우, 실무상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청업체는 직원들에 대한 지휘ㆍ감독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경영권을 본질적으로 침해 받게 되고, 원청은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는 제3자와 근로조건에 대해 교섭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역으로 원청이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피하려 하청업체 노조와 교섭하는 경우, 이는 하청업체에 대한 상당한 지휘ㆍ명령으로 인정되어 불법파견 리스크가 높아지게 된다"며 "원청 입장에서는 교섭에 응하던 응하지 아니하던 형사 처벌의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변호사는 "사용자성 확대는 현행 법률체계에 부합하지 않는 입법자의 의사에 반하는 해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며 "원청 조합과 하청업체 조합의 교섭창구단일화 문제, 단체협약의 우선적인 효력 문제 등 또 다른 법리적 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경연도 즉시 입장을 내 "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부정해 온 판례와 배치된다"며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은 외부인력을 활용하는 기업 경영방식을 제한해 하청업체 위축 및 관련 산업생태계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성토했다.
한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이날 오후 5시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CJ대한통운 원청 부당노동행위 판결 승소에 따른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고 밝혔다. 전국택배노동조합도 입장문을 내고 "법적 사용자인 대리점은 대부분이 기사 10여 명 정도로 구성되는 영세사업자에 불과해 사실상 택배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능력도, 권한도, 처지도 되지 않는다"며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 및 수수료와 처우는 사실상 원청에 의해 결정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판정은 우체국, 롯데, 한진, 로젠 등의 택배사 모두에 적용되는 판정"이라며 "법적 판단을 받겠다며 교섭에 불응한다면 택배노조는 투쟁을 벌여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구제명령의 내용과 구제명령에 이른 이유는 추후 재심판정서를 봐야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전부인용인지 일부인용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하청노조에 대하여 원청기업의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성을 긍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무상 어려움보다는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이 상위 가치며, (이번 판정은) 하청노동자의 노동3권 실질화를 위한 최소한의 토대가 될 것"이라며 "여러 비판이 예상되지만 변한 세상에 맞는 법해석과 법형성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출처 : 월간노동법률 취재 : 곽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