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연도별 임피제 차등적용 적법” 법원 판단 또 나왔다
“중소기업은행 임피제, 연령 차별 아냐”…임피제 유효성도 사실상 인정
출생연도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다르게 적용받은 근로자들이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이라며 중소기업은행에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회사 손을 들었다. 법원은 중소기업은행의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이 아니며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근로자들이 입은 불이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한 회사가 임금피크제를 통해 고령노동자들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보장했고, 임금체계 개편의 일환으로 임금피크제가 도입됐기 때문에 회사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목적 역시 부당하지 않다고 봤다. 사실상 중소기업은행의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은행 임피제, 동의 없는 데다 연령 차별"
14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재판장 정회일)는 지난 7일 중소기업은행 1961~1963년생 근로자 47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과거 중소기업은행은 만 58세였던 정년을 만 59세로 연장하면서 만 55세부터 약 4년간 임금을 단계적으로 차감하는 임금피크제를 2005년 처음 도입했다. 2008년엔 정년을 만 60세로 연장하면서 적용기간을 5년으로 늘렸다.
2016년엔 법정 정년이 연장되면서 임금피크제 시행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임금피크제 규정이 도입됐다. 회사는 만 57세부터 3년간 임금을 삭감하는 것으로 제도를 변경하면서 1961년 이전 출생자에게는 기존 제도가 그대로 적용되도록 경과 규정을 뒀다. 1962년 출생자는 만 56세부터, 1963년 출생자는 만 56세 6개월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도록 임금피크제 운영 규정을 개정했다.
1961~1963년생 근로자들은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임금피크제를 동의한 적 없고,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에 해당한다며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가 적용되지 않았을 경우 자신들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연령 차별 아냐…도입 목적도 정당"
먼저, 법원은 회사가 근로자들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ㆍ시행한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법원이 꺼내든 법리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해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 개별 근로계약에 우선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한 지난 2019년 대법원 판단이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했더라도 근로계약서에 더 유리한 내용이 있다면 변경 취업규칙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이에 따라 법원은 중소기업은행과 근로자들 사이에 체결된 근로계약을 살폈는데, 근로계약엔 근로자들이 수령할 급여의 액수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았다. 법원은 "회사가 근로자들과의 개별적인 동의를 거치지 않고 회사의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임금피크제 운영 규정이나 임금피크제 보수 규정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적용했더라도 이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법원은 회사의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에 해당하는지 살폈다. 앞서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무효 여부를 판단할 때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의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따른 대상 조치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확보한 재원이 제도 도입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법원은 중소기업은행의 임금피크제가 연령을 이유로 차등을 두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인정했지만, 이것이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회사는 정년 연장을 통해 고령노동자들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보장했고, 임금피크제로 인건비 상승 부담을 경감할 수 있었다. 이는 기존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과 신규채용 감축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법원은 회사의 임금피트제 도입ㆍ시행이 임금체계 개편 조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또한, 회사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목적이 부당하지 않다고 봤다.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회사는 노동조합으로부터 임금피크제 시행 동의를 구했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노사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법원은 회사의 임금피크제가 오히려 근로자들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됐다고도 봤다. 회사는 2016년 임금피크제 적용기간을 단축하면서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3년간 매년 종전 임금의 65%를 지급하기로 했다.
법원은 "회사가 2016년 임금피크제 운영 규정을 개정하고 임금피크제 보수 규정을 신설할 당시 추가로 정년이 연장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정년의 연장 없이 임금만을 삭감하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함께 실시된 정년 연장 조치는 임금피크제 적용에 따른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보상이 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근로자들이 만 55세부터 만 58세까지 3년간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총액은 임금피크제 적용 직전 연봉의 약 300% 상당이지만, 임금피크제를 동반한 정년 연장이 실시되면서 1962년생은 360%를, 1963년생은 377.5%를 수령할 수 있게 됐다.
다만, 1961년생의 경우 만 55세 이후로 임금피크제 시행 이전과 동일하거나 보다 적은 임금 총액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에 대해 법원은 "이들에게 새로이 부여한 업무 대부분이 업무 강도나 난이도가 낮았고, 금융실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아 이를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중소기업은행의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근로자들이 입게 되는 불이익이 크지 않다고 최종 판단한 것은 사실상 중소기업은행의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 측을 대리한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임금피크제 유효성을 다툰 대상자가 경과조치를 적용받은 일부 근로자들이긴 하지만,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중소기업은행의 임금피크제가 전체적으로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출생연도에 따라 임금피크제 규정을 다르게 적용해도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이 아니라고 한 첫 대법원 판단이 나온 이후엔 판결 방향이 한 곳으로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앞서 지난 6월 30일 대법은 중소기업은행이 법정 정년 연장으로 새로운 임금피크제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며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같은 날 서울보증보험 사건에서도 대법은 서울보증보험의 임금피크제가 연령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보증보험의 임금피크제도 중소기업은행과 같이 출생연도에 따라 임금피크제 규정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었다.
김 변호사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변경할 때 경과 규정을 두고 회사의 경영상 필요에 따라 그 경과 규정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판결문에 명확하게 적시돼 있진 않지만 공공기관이 도입한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정년유지형이든, 정년 연장형이든 근로자에게 기존보다 임금 삭감률이 크다는 등의 심각한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임금피크제를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앞서 대법원도 그렇게 결정한 바 있어 앞으로의 하급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올 거라고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출처 : 월간노동법률 이동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