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도달 근로자 정년퇴직시켰더니…대법원 “부당해고”, 이유는?
원심과 대법원 판단을 가른 것은 정년을 만 64세로 정한 개정 취업규칙이 정년퇴직 시점에 유효한지 여부였다. 원심은 개정 취업규칙이 적용돼 만 64세에 도달한 근로자가 당연퇴직된 거라고 봤지만, 대법원은 정년퇴직 시점엔 개정 취업규칙이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아 효력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4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재판장 노태악)는 지난달 20일 사회복지법인 한벗재단에서 정년퇴직한 A 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뒤집고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기간 정함 없는 근로자에 '정년퇴직'…"부당해고"
A 씨는 사회복지법인 한벗재단에서 3개월간 장년인턴으로 일했다. 인턴기간이 끝난 후 A 씨는 회사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던 중 회사는 만 55세였던 정년을 만 64세로 변경하는 취업규칙을 2020년 9월 8일 개정했다. 이후 회사는 2021년 6월 25일 자로 A 씨가 정년 64세가 됐다며 A 씨를 정년퇴직 처리했다.
A 씨는 정년퇴직 처리가 부당하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그러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A 씨의 정년이 도래하면서 당연퇴직된 거라며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A 씨는 "회사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이미 59세였고, 당시는 회사 정년은 55세여서 정년이 지난 상태였다"며 "그 후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해 왔기 때문에 정년의 제한을 받지 않는 근로자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2심 "개정 취업규칙 소급 시행해…부당해고 아냐"
1심은 중노위 판정을 뒤집고 부당해고가 맞다고 판단했다. 정년을 만 64세로 변경한 개정 취업규칙은 A 씨가 정년퇴직 처리된 2021년 6월 25일엔 아직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였다. 1심은 개정 취업규칙이 A 씨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아직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개정 취업규칙의 정년 조항을 근거로 A 씨를 정년퇴직 처리를 한 것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따라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으로서 해고에 해당한다"며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1심을 뒤집고 정년퇴직 처리가 정당하다고 봤다. 2심은 개정 취업규칙이 A 씨에게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2심은 "취업규칙을 개정해 만 64세로 연장한 것이 회사 직원들에게 불이익한 변경이라고 볼 수 없고 이는 A 씨에게도 마찬가지"라며 "이사회가 개정 취업규칙을 2020년 9월 8일부터 소급해 시행하기로 심의 의결했기 때문에 개정 취업규칙은 유효하게 시행됐다"고 설명했다.
대법 "퇴직 당시 '64세 정년' 효력 없었다" 원심 파기
판결은 대법원에서 또 한 번 뒤집혔다. 대법원은 개정 취업규칙이 이사회에서 추인한 2020년 9월 8일부터 소급해 시행됐다는 점을 수긍하면서도 "소급 시행됐다는 이유로 정년퇴직 처리가 해고가 아니라고 판단한 원심은 수긍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 씨의 정년이 도달해 근로관계가 당연종료됐는지 여부는 당연종료 여부를 다투는 시점에 유효한 정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 씨가 정년퇴직한 날짜는 2021년 6월 25일이었다. 대법원은 이 시점에 유효한 정년이 개정 취업규칙의 만 64세가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정년퇴직 처리 당시인 2021년 6월 25일 개정 취업규칙은 이사회 심의 의결을 얻지 못해 효력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 시점을 기준으로 유효하지 않은 만 64세 정년을 근거로 A 씨의 근로관계가 당연종료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A 씨가 근로관계가 당연종료된 시점을 2022년 3월 24일이라고 봤다. 개정 취업규칙이 이사회에서 심의 의결된 날이 이날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때 이미 A 씨는 정년 64세를 도과했고 A 씨가 64세 정년 도과 이후에 회사의 동의하에 근로관계를 유지한 적 없으므로 원고의 근로관계는 이날 자로 당연종료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개정 취업규칙이 소급해 시행됐고 A 씨가 2021년 6월 25일 개정 취업규칙에 따라 64세 정년에 도달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관계가 당연종료됐다고 판단한 원심은 근로관계의 당연종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