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노무법인비상(admin) 시간 2022-10-13 14: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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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실형 확정 전엔 직원 징계 못 해”...기아 징계권 '제동'

기아 근로자가 형사휴직에 들어간 경우 실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징계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기아 측은 형사휴직 시 징계를 제한하는 단체협약 규정이 적용되는 징계사유를 제한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징계사유와는 관계없이 이 규정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5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법 제15민사부(재판장 윤강열)는 기아에서 해고된 근로자 A 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A 씨의 항소를 받아들이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형사휴직 징계제한규정은 징계사유를 묻지 않고 형사휴직 기간 중에는 징계절차를 보류하고 석방돼 형사휴직 기간이 만료되거나 형사재판이 종료돼 실형이 확정된 경우 비로소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A 씨 해고처분은 이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구속된 근로자 징계하려니...해석 문제된 단체협약 

 
A 씨는 기아 소하리 공장 근로자로 2016년 지게차로 경비실을 들이받아 유리창과 외벽을 파손시켜 해고당했다. 음주한 상태로 1시간 일찍 퇴근하려는 A 씨를 경비원이 제지하자 그는 "왜 경비실에서 근태관리를 하느냐"고 난동을 부렸다. 그 다음날에는 전날 일에 앙심을 품고 지게차로 경비실을 들이받아 외벽을 파손시켰다.
 
A 씨는 구속됐고 실형이 확정되기 전 징계해고 당했다. A 씨가 해고된 시점은 1심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해 2심 선고가 나오기 전이었다.
 
문제가 된 건 단체협약 '휴직' 부분에 있는 형사휴직 징계제한규정이다. 단체협약은 형사휴직 기간을 "형사상 소추로 인해 구속돼 형사휴직 중인 경우에는 석방 시까지"로 정하면서 "단 실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형사상 소추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해 형사 재판에 회부된다는 의미다.
 
A 씨는 해고가 단체협약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회사 측은 형사휴직 징계제한규정이 '형사상 소추로 형을 선고받은 경우'가 징계사유일 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시 말해 징계사유가 형사상 소추가 아닌 '업무방해, 회사 재산손실, 비행, 시설무단사용, 안전규칙위반'이니 실형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실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징계할 수 있다"는 단서의 해석이 됐다. 이 단서가 '형사상 소추로 형을 선고받은 경우'가 징계사유일 때만 적용되는지, 징계사유와 관계없이 형사휴직 중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것인지가 쟁점이다.
 

엇갈린 1, 2심...법원, 징계제한규정 취지 어떻게 봤나 

 
법원은 형사휴직 징계제한규정의 도입 과정과 목적,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고 그 결과 1심은 회사 측 손을, 2심은 근로자 측 손을 들었다.
 
기아의 형사휴직 징계제한규정은 2006년 노동조합의 요구에 따라 개정된 것이다. 기아 근로자는 형사휴직이 끝난 후 15일 이내 복직을 청원하지 않으면 기간 만료와 동시에 해직된다.
 
개정 전 단체협약은 형사휴직 기간을 '최종심'까지로 정하고 있었다. 이 경우 실형을 받아 구속되면 복직청원을 할 수 없어 자연해직되는 문제가 생긴다. 징계를 다투지도 못하고 해직되는 건 불합리하다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따라 형사휴직 기간은 '석방 시'로 변경됐고 그 과정에서 "실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단서도 도입됐다.
 
1심은 단서가 도입된 배경에 집중했다. 1심은 "형사휴직 징계제한규정이 근로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것이었다면 '실형이 확정된 경우'가 아니라 '석방 이후'에 징계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개정했어야 해서 단서부분을 추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06년 단체협약이 개정되면서 '형사상 소추로 인해 형을 선고받은 경우'를 징계사유로 징계할 경우에도 노사 간 해석 차이로 구속된 근로자의 석방 시까지 징계절차를 지연시키려고 할 것을 우려해 '실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징계할 수 있다'는 단서를 정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1심은 형사휴직 징계제한규정이 단체협약의 휴직 부분에 단서로만 구성돼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1심은 "A 씨의 주장과 같이 모든 징계사유에 대해 실형이 확정된 경우에 한해 징계할 수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면 이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회사의 징계권을 제한하는 규정으로서 단체협약 '징계' 부분에 있어야 했지만 휴직에 관한 부분에 규정돼 있을 뿐만 아니라 단서조항으로 규정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2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 규정 단서에는 명문상 형사상 소추로 형을 선고받은 경우의 징계사유와 나머지 징계사유로 징계하는 경우를 구별하지 않아 문언 자체로 징계사유에 관해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며 "규정의 본문 역시 형사휴직에 관한 규정일 뿐 '형사상 소추로 형을 선고받은 경우'의 징계사유에 관한 규정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1심과 같이 판단한다면 규정의 문언과 객관적 의미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제한적으로 해석하려면 그 취지를 문언에 명시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나갔다.
 
또 재판부는 "조합원이 형사사건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 즉시 징계가 가능하도록 할 것인지, 석방되거나 실형이 확정된 이후에 비로소 징계가 가능하도록 할 것인지는 노사 간 합의에 의해 징계권과 방어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시점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단체협약은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이 규정 단서는 사용자의 징계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간의 합의에 따라 시기적 제한을 둠으로써 징계권의 행사방식을 정한 것으로 사용자의 징계권 행사 그 자체를 제한하는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2심 재판부는 해고가 무효라고 보고 회사가 A 씨에게 부당징계 가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형사휴직 징계제한규정 해석, 영향은?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해당 규정이 도입된 경위와 목적,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다. 1심은 회사가 단서를 도입한 취지에 주목했고 2심은 단체협약 문헌에 중점을 두고 다른 사정도 함께 고려해 판단했다는 차이가 있다.
 
근로자 측을 대리한 김차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변호사는 "2심은 단체협약을 해석할 때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기존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기아의 단체협약 해석과 관련된 문제로 다른 사업장의 유사 사건에 영향을 주는 판결은 아니다. 특히 형사휴직 시 징계를 제한하는 단체협약이 있는 경우는 일반적이지는 않다. 같은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자동차나 쌍용자동차의 단체협약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규정이다.
 
다만 향후 기아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 동일한 규정이 문제되는 경우 영향을 줄 수는 있다. 법원 판결 결과에 따라 기아에서 징계하는 방법이나 절차가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김차곤 변호사는 "기아 근로자들은 형사휴직 상태에서 징계절차가 진행되는 경우 노동자들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며 "다른 사업장의 경우 이와 동일한 규정은 아니더라도 단체협약 등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징계 제한 규정 등이 있는데 그 규정의 적용 범위를 축소해석하려는 사용자의 행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월간노동법률, 취재 : 이지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