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적용유예 ‘나비효과’ 대우조선 무죄 판결대기업 최초의 중대재해 선고가 ‘무죄’로 기록됐다. 건설공사 금액 50억원 미만인 경우 적용을 3년간 유예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책임자의 법적 책임을 벗겼다. 다만 원청이 건설공사 ‘도급인’으로 판단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유죄가 나왔다. 건설업·조선업에서 주로 이뤄지는 공사도급계약과 관련해 ‘전문건설공사’ 해석을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 전 대표 무죄, 조선소장 ‘실형’ 유일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1단독(류준구 부장판사)은 19일 중대재해처벌법(산업재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성근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화오션 법인에는 벌금 3억원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경영책임자에게 징역 1년 이상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원청에 대한 실형 선고는 대우조선해양의 마지막 대표이자 사고 당시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조선소장)였던 박두선 전 사장이 유일했다. 박 전 사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재판부는 피해자 유족의 피해를 회복할 기회를 주기 위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 혐의로 함께 기소된 승강기설치 회사인 사외하청업체 ‘건우테크’ 대표와 법인은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2천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청 작업반장 2명에 대해선 각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사망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방호조치가 없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건우테크 소속 노동자 A씨는 2022년 3월25일 거제 옥포조선소의 타워크레인 리프트 와이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리프트 상부에서 60미터 아래로 떨어진 무게 약 3~5킬로그램의 와이어 연결 소켓에 머리를 맞아 목숨을 잃었다. 검찰 수사 결과, 원·하청은 낙하물 위험 방지를 위한 방호장치를 설치하지 않았고 작업지휘자도 선임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검찰은 이 전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재해예방 예산 편성 및 집행(4조4호) △하도급 업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 능력 평가기준 마련(4조9호) 조항을 위반했다고 보고 지난해 4월 기소했다. 세 차례 공판 끝에 검찰은 지난해 12월 결심공판에서 이 전 사장에게 징역 2년을, 한화오션 법인에는 벌금 3억원을 구형했다. 박 전 사장과 하청 대표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하청 법인에는 벌금 2억원을 구형했다.승강 설비 교체작업 ‘건설공사’ 판단쟁점은 리프트 와이어 교체작업을 ‘전문건설공사’로 볼 수 있는지였다. 건설공사로 판단되면 공사금액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인 경우 지난해 1월26일까지 법 적용이 3년간 유예돼 사고 당시인 2022년 3월은 유예기간에 들어간다. 또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건설공사 ‘발주자-도급인’ 지위를 놓고도 법정공방이 일었다. 도급인 범위를 대폭 확대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2020년 1월 시행된 이후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한 경우 원청이 수급인(하청)에 대한 안전조치 의무를 부담하도록 강화됐다. 반대로 건설공사 ‘발주자’로 해석되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법원은 건우테크가 도급받은 작업을 ‘전문건설공사’로 해석했다. 류 부장판사는 “(건설산업기본법상) 크레인 승강기 설비는 원래 용도대로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유지·관리가 필요한 핵심 부분”이라고 판시했다. 리프트 와이어 교체작업은 크레인의 유지·보수 작업에 불과하다는 검찰측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와이어 교체는 상당히 높은 정도의 기술이나 노하우를 요구하는 위험한 작업이라는 것이다와이어 교체작업이 전문공사로 판단됨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은 법 적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류 부장판사는 “건우테크가 이 사건 작업을 포함해 연간 단위로 도급받은 금액이 2억2천300만원에 불과하다”며 “이 사건 작업 역시 50억원 미만인 것이 분명하다. 사고일 2022년 3월22일을 기준으로 피고인들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원청 도급인 지위 인정 ‘위험의 외주화’ 질타다만 원청의 도급인 지위를 인정하며 ‘위험의 외주화’를 질타했다. 대우조선해양을 변호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인단은 ‘발주자’ 주장을 꺼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류 부장판사는 “한화오션이 실질적으로 작업의 시공을 의도적으로 주도하지 않았다”며 “전문 역량이 없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건우테크 대표에게 맡겼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도급인 지위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취지를 고려해 ‘규범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지난해 11월 인천항만공사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특히 한화오션이 승강 설비 유지·보수 작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도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인력·장비가 부족한 업체를 선정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건우테크는 입찰가의 58.7%에 불과한 금액으로 낙찰받았다. 류 부장판사는 “(원청이) 자체적으로 작업하면서 지출이 예상되는 비용보다 상당히 저가로 외부 업체에 일을 도급해서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비용 절감으로 인한 안전보건상 조치가 부족해져 산재 발생의 위험은 수급자(하청)한테 떠넘겼다”고 꼬집었다.대우조선 전 사장 묵묵부답, 법시행 뒤 사망사고 6건하청의 안전관리 비용이 부족한 점을 알면서도 대우조선해양이 이를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박 전 사장은 법정구속을 피했다. 박두선 전 사장은 선고 직후 “피해회복과 재발방지 대책을 어떻게 실시했나”라는 <매일노동뉴스> 질문에 아무런 대답 없이 법원을 빠져나갔다. 이 전 대표는 “많은 어려운 동료들과 피해자가 있는 상황에서 입장을 표명할 상황이 아니다”며 “은퇴한 지 3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하청 건우테크 변호인은 “승강 설비를 유지·보수할 수 있는 기술력이나 노하우를 보유한 업체가 거의 없다”며 “원청이 비용을 쓰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노동계는 “범죄는 있지만 처벌은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한화오션 무죄와 처벌 유예로 인해 범죄행위가 명백한 사업주들은 안도감을 가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에 즉각 항소를 요구했다. 한화오션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해 9월까지 6건(6명 사망)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 중 5건은 현재 부산지방고용노동청과 통용고용노동지청에서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출처: 매일노동뉴스 홍준표기자]